북 리뷰

숨결이 바람될 때 - 폴 칼라니티

요가하는수달 2020. 5. 20. 14: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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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죽음에 대하여

 

이 책은 '죽음'에 대해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여러분들은 '죽음'에 대해 언제 처음 생각해보셨나요? '죽음'을 떠올렸을 때 어떤 생각을 하게되나요?

 

제가 처음 죽음에 대해 생각했던 때가 기억 납니다. 6~7살의 유치원생이였는데, 할머니 집의 아늑한 이불 속에서 두려움에 떨면서 죽음에 대해 생각했습니다. 이런 생각을 하게 만든 트리거는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만, 죽음 이후에는 무엇이 있을까, 지금 생각을 하고 있는 내 의식은 영영 사라지는 것일까하는 생각을 한참동안 했던 것 같습니다. 며칠간 악몽을 꿀 정도로 너무 무서웠습니다. 이후에 어떻게 죽음에 대한 생각을 그만하게 되었는지 역시 생각나지 않습니다만, 처음 죽음을 의식했을 때의 기억은 아직도 또렷합니다.

 

그 이후에 '죽음'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본 적이 없는 것 같습니다. 주변 친지들의 죽음, 지인의 부모님의 죽음 등 많은 장례식에 참석했지만, 무의식적으로 '죽음'에 대해 깊이 생각하는 것을 자제하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어린시절의 두려움이 뇌리에 깊게 각인되었기 때문일까요. 

 

그러나 이 책은 양손으로 내 고개를 부드럽게 돌려서 '이게 바로 죽음이란다. 똑바로 쳐다보지 않을래?' 하고 말하는 것 같았습니다.

 

■ 저자와 책 소개

 

이 책은 폴 칼라니티라는 미국의 신경외과의사가 30대의 젊은 나이에 갑자기 암에 걸리게 되면서 집필하기 시작한 수필입니다. 의사의 입장에서 수 많은 죽음을 보아왔던 저자가 한 순간에 환자가 되어 직접 죽음을 대면하면서 겪게 된 일들과 다양한 감정들, 저자의 생각에 대한 이야기가 담겨 있습니다. 예스 24에 따르면 2016년 1월 원서가 출간됨과 동시에 미국 아마존과 뉴욕타임스에서 베스트셀러 1위에 등극하였고, 12주 연속으로 뉴욕타임즈 베스트셀러에 기록되었다고 합니다.

 

■ 줄거리

 

책의 전반부는 저자가 의사로서 수많은 환자들을 치료하면서 겪은 에피소드와 의사의 입장에서 바라 본 죽음에 대해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이 부분을 읽을 때는 한 편의 의학드라마를 보는 것 같았습니다. 힘든 수술과 정신적 스트레스, 죽음을 앞둔 환자와의 대화, 죽음에 점점 익숙해지고 무감각해지는 자신에 대한 자기반성 등의 이야기가 담겨있습니다.

 

책의 중반부는 암 진단을 받은 후의 이야기를 서술하고 있습니다. 죽음을 눈 앞에 대면한 저자의 내적 고민이 잘 드러납니다. 저자는 남은 시간을 의미있고 가치있게 보내려는 노력을 멈추지 않습니다. 먼저, 자신의 삶에서 진정으로 의미있고 가치 있는 일이 무엇인지 탐색했을 것 입니다. 그러나 고민은 여기에서 끝나지 않습니다. 남은 시간에 따라 우선순위가 달라지기 때문입니다. 저자는 자신에게 10년이 남았다면 신경외과의사로서 본인의 소명을 다하기 위해 힘쓸 것이고, 2년이내로 남았다면 글을 쓸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가장 큰 문제는 자신에게 얼마의 시간이 주어졌는지는 아무도 모른단 것이었죠. 암이 가져다 준 딜레마였죠. 저자는 이 부분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서술하고 있습니다.

 

"암의 저주에 걸린 나는 다가오는 죽음을 무시하지도 거기에 매이지도 못하는 기이하고도 불편한 상황에 처하고 말았다. 암은 물러나 있을 때조차 긴 그림자를 드리웠다."

 

저자는 죽음을 대면한 스스로의 모습을 담담하게 서술합니다. 서서히 다가오는 죽음 앞에서 어떤 생각을 했는지, 본인은 어떻게 시한부의 일상을 살아냈는지, 가족들의 사랑과 유대가 얼마나 큰 도움이 되었는지 솔직하게 서술합니다. 마치 시한부 삶에 대한 다큐멘터리를 보는 것도 같았습니다.

 

책의 후반부는 폴 칼라니티의 아내인 루시의 이야기 입니다. 루시는 죽음을 맞이하고 있는 폴 칼라니티를 바라보면서 느꼈던 감정들과 저자가 책에서 미처 풀어내지 못한 이야기들을 전하고 있습니다. 또한, 저자가 임종을 맞이하는 모습을 생생히 묘사하고 있는데, 눈가에 눈물이 촉촉히 맺혔습니다.

 

■ 기억에 남는 구절

 

"그날 아침 나는 결심했다. 수술실로 다시 돌악갈 수 있도록 노력하기로. 왜냐고? 난 그렇게 할 수 있으니까. 그게 바로 나니까. 그리고 지금과는 다른 방식으로 사는 법을 배워야 한다. 죽음은 누구에게나 찾아오는 순회 방문객과도 같지만, 설사 내가 죽어가고 있더라도 실제로 죽기 전까지는 나는 여전히 살아 있다."

 

"당신은 가치 있게 여기는 것들을 찾아가고 있는 중이에요. 그건 쉽지 않은 일이죠."

 

"병을 앓으면서 겪게 되는 종잡을 수 없는 건 가치관이 끊임없이 바뀐다는 것이다. 환자가 되면 자신에게 중요한게 뭔지 알아내려고 계속 애를 쓰게 된다. 누군가가 내 신용카드를 가져가 버리는 바람에 자금 계획 세우는 법을 배워야 하는 상황에 처하는 것과 비슷하다."

 

"그 때 다시 에마의 목소리가 들렸다. '당신에게 가장 중요한게 뭔지 찾아내야 해요.'"

 

 "에마는 나의 옛 정체성을 되돌려주지는 않았다. 대신에 새로운 정체성을 형성할 수 있는 내 능력을 지켜주었다. 그리고 나는 새로운 정체성이 필요하리라는 것을 마침내 깨달았다.'

 

"죽음은 예상보다 느리게 올지도 모르지만, 원하는 것보다는 분명 빠르게 닥쳐올 것이다. 이런 자각에 대해 두 가지 반응이 있을 수 있다. 가장 명백한 반응은 정신없이 움직이려는 충동일 것이다. 즉, 여행도 하고, 근사한 식사도 하고, 여태껏 접어둔 많은 소망을 성취하면서 '삶을 만끽하는' 것이다. 하지만 암은 무자비하게도 시간뿐만 아니라 기력까지 빼앗아버려 하루에 할 수 있는 일의 양이 크게 줄었다."

 

■ 감상

 

내 삶의 의미와 가치를 찾는 일을 종종 시도하지만, 그 과정은 고독하고 끝을 알 수 없기 때문에 이를 유예하고 눈 앞의 목표를 좇거나 다시 일상으로 도피하곤 합니다. 그러나 시한부의 삶을 맞이하면 더 이상 이 일을 미룰 수 없습니다. 그래서 시한부 선고를 받은 이후 혹은 죽음의 근처까지 다녀온 이후 진정 의미있는 삶을 사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종종 듣곤 하나봅니다. 이제 일상으로의 도피를 그만하고 내 눈 앞에 선명하게 보이지만 외면해왔던 실존적 문제에 보다 치열하게 대처해보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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